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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Amazon) 창립한 포브스 선정 최고 부자 제프 베조스

by 잭앤종 2021. 6. 18.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부자, 미국 전자 상거래 40%를 좌지우지하며 고등학생 때부터 우주 진출의 꿈을 간직해온 남자, 아니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아마존(Amazon)의 창립자, 제프리 베이조스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1. 천재 공학도

2. 아마존의 창립자가 되다

3. 제프 베이조스의 철학

 

 

1. 천재 공학도

  제프리 프레스턴 조르겐센(Jefferey Preston Jorgensen)은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성 조르겐센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친가는 덴마크 출신입니다. 그의 조상들은 1900년쯤에 시카고로 이민을 왔다고 합니다. 제프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테드는 19세, 어머니 재클린은 17세에 불과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쉽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제프의 어머니 재클린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제프를 잘 교육시키려 노력했고, 본인도 어린 제프를 데리고 야간 학교에 나가며 학구열을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이 젊은 부부는 이혼하게 되고, 어머니 재클린은 1968년에 쿠바 출신 이민자 미구엘 베조스와 결혼합니다. 이때 제프는 네 살이었고, 새아버지를 따라 베이조스라는 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름 제프 베이조스의 탄생이죠.

  새아버지 미구엘은 공학자였고, 뉴멕시코 대학에서 공부한 후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석유회사 엑슨(Exxon)에 엔지니어로 취업했습니다. 가족들은 그와 함께 휴스턴으로 이사했고, 제프는 리버 옥스 초등학교를 다니고 졸업합니다. 제프의 외가 역시 공학도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요, 소년의 외할아버지 로렌스 프레스턴 자이스는 앨버커키에 있는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지역 디렉터였고, 은퇴한 후 텍사스의 작은 마을 코툴라의 한 목장에서 노후를 보냈습니다. 휴스턴에서 차로 다섯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기에, 소년 제프는 여름 방학이면 그 목장을 찾아 외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곤 했습니다. 훗날 그는 이때의 추억과 경험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실제로 제프는 나중에 이 농장에 투자해서 규모를 열 배 이상 키웁니다. 

  이런 공학도 집안에서 자란 소년 제프 역시 어렸을 때부터 과학 기술과 기계 조작에 천부적 재능을 보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 일화를 쓴 글들을 보면, 꼬마 시절부터 이미 알람 시계를 조작해서 어린 형제들을 놀라게 했던 일이나, 스크루드라이버 하나로 침대를 분해했다는 전설 같은 무용담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뾰족한 송곳이 필연적으로 주머니 밖으로 빠져나오듯, 미국 동남부의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이사 간 고등학생 제프는 이미 또래 최고의 유망주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 자격으로 플로리다 대학의 과학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유서 깊은 미국의 장학 프로그램 내셔널 메리트 장학생으로 선정되기도 하며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는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했는데, 그때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는 꿈을 꾼다고 말해서 지역 언론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이 당돌한 고등학생이 수십 년 뒤 정말로 우주 진출 사업을 추진할지 누가 알았을까요? 

  제프는 미국 전통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서 컴퓨터와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평점 4.2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졸업합니다. 엄친아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최고의 인재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대기업으로 가기보다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을 택합니다. 그는 파이텔이라는 핀테크 스타트업 회사에서 중직을 맡고, 뱅커스 트러스트라는 은행사에서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커리어를 쌓은 후, 데이비드 쇼가 설립한 월스트리트의 신생 회사 D. E. Shaw & Co.으로 이직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른이라는 나이에 부사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1993년에는 프린스턴 동문 맥켄지 터틀과 결혼도 합니다. 

 

 

2. 아마존의 창립자가 되다

  제프 베이조스의 인생 곡선은 당시 나날이 진보하던 인터넷 기술이 특이점을 돌파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순 사이 급격히 달라집니다. 원시적 형태의 인터넷은 이미 1960-70년대 미 국방부 군사 기술의 일환으로 태동했는데, 1989년에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하고, 1993년에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최초의 웹브라우저 모자이크(Mosaic)가 출시된 데 이어 1994년에는 초창기 온라인 세계의 대표적 검색 엔진 야후(Yahoo), 그리고 당대의 강자로 군림했던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Netscape)가 선을 보이며, 그야말로 인터넷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채 폭발적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제프가 1994년 월스트리트 회사 부사장 자리를 내던지고 인터넷 세계로 뛰어든 건 인류 역사상 가장 신기하고 거대한 변화에 거의 같은 박자로 함께 움직인, 실로 놀라운 안목의 결과인 셈입니다. 이는 분명 그의 직업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그는 컴퓨터와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계속해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면서 이 분야가 갖고 있는 잠재력과 발전 곡선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인터넷은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1994년, 제프 베이조스는 모든 영광과 안정적인 커리어를 저버리고, 자신의 집 차고로 돌아오게 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인터넷의 잠재력을 알아본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네트워크와 웹브라우저를 개발하기 위해 차고에서 컴퓨터와 기계들을 만지며 열심히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제프가 택한 길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인터넷을 만들기보다는 그걸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무엇을 팔면 좋을지 오랫동안 고심하며 통신 판매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20개의 품목들을 연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책이었습니다. 당시 반스앤노블이나 보더스 같은 서점들이 있었으나, 온라인 책 판매와 홍보는 별로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곧장 LA로 날아갑니다. 그곳에서 미국 서적 판매 컨벤션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던 중, 그는 눈이 번쩍 뜨이는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대형 책 도매업자들이 이미 전자 시스템을 어느 정도 구축해놓았다는 사실이었죠.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인터넷 세계 속에 들어온 잠재 고객들이 그 모든 책들을 찾아보고 곧바로 주문까지 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었습니다. 제프의 회사에는 이러한 모험을 감당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고, 제프는 월스트리트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한 채 그의 아내 맥켄지와 함께 직접 이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능력도 있고 용기도 있지만, 단 둘이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어 낯선 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었죠. 인재와 팀이 필요했습니다. 어디에 회사를 세워야 할지 고민하던 제프가 아버지에게 받은 낡은 재킷을 걸쳐 입고 향한 곳은 태평양과 맞닿은 미국 서부의 도시 시애틀이었습니다. 휴스턴과 마이애미에서 자라 뉴욕에서 일했던 베이조스가 갑자기 아메리카 대륙 정 반대편에 있는 시애틀로 향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는 캐나다와 알래스카, 아래로는 캘리포니아,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는 이 도시는 이미 190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들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대공황으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2차 대전 당시 군수품을 생산하면서 이른바 전쟁 특수 덕분에 다시금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굴지의 항공사 보잉이 공장을 차리면서 공업과 제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했고, 1990년대부터는 생명공학 그리고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관련 산업체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수만 명의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었죠. 이 도시는 보잉,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세계적인 대기업들을 낳은 어머니 도시가 됩니다. 제프에게 시애틀은 인생 2막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줄 수 있는 최고의 도시였죠. 아내 맥켄지가 운전대를 잡고, 제프는 정신없이 사업 계획을 써 내려가며 시애틀에 도착합니다.

  차고에서 고심 끝에 테스트용 웹사이트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제프는 300여명의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온라인 시스템이 잘 운영되는지 시험도 마쳤습니다. 그는 고심 끝에 회사명을 아마존(Amazon)으로 짓기로 결정합니다. 한편으로는 알파벳 첫 글자로 시작하는 게 마음에 들기도 했고, 남아메리카의 커다란 강 아마존처럼 세계 곳곳을 흐르며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고 싶다는 그의 비전이 잘 반영된 이름이기도 했죠. 그리고 1995년 7월 16일, 마침내 그의 첫 온라인 매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앞선 300여 명의 "실험 참여자"들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기 시작했죠. 아마존의 강물이 세계에 흐르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제프 베이조스는 그의 사업이 작지 않은 리스크를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배짱 좋게도,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22명의 투자자들에게 그들이 전 재산을 잃을 확률이 70%라고 경고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제프가 자신의 사업이 위험하지만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정말 비전 없다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아마 그의 아버지 미구엘 베이조스 역시 아들의 성공을 굳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마 평생 모아 온 재산의 거의 전부였을 무려 30만 불을 투자하며 아들의 사업을 든든히 뒷받침해주었죠. 제프 베이조스의 부모님 역시 인터넷 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을 미리 알아본 것일까요? 여기에서 그의 어머니는 명언을 하나 남깁니다. "우리는 인터넷에 돈을 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제프에게 돈을 건다."

  하지만 투자자들도, 제프 베이조스 본인도 몰랐을 겁니다. 이 위험한 사업이 얼마나 빨리 성공을 해버릴지를요. 아마존은 한 달 만에 미국 50개 주와 45개국에 책을 팔았습니다. 단 두 달 후인 9월, 주간 매출은 이미 2만 불을 달성했습니다. 제프와 그의 팀은 웹사이트를 계속해서 다듬어 나가며 최소한의 클릭만으로 쇼핑을 할 수 있도록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인터페이스를 구축했고, 사용자 리뷰도 도입했습니다. 이메일로 주문 확인서를 받아보는 시스템 역시 획기적인 발상이었죠. 물론 세간에서는 여전히 그의 사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반스앤노블이나 보더스 같은 초대형 책 도매상들이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기만 하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아마존의 강물 따위는 지하 깊은 곳으로 파묻혀 버릴 거라는 비판이었죠.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뒤집어집니다. 새로운 아마존의 물줄기가 이전 시대의 두 거인들이 막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해져 버린 것이죠. 단 2년 만에 아마존은 시장점유율에서 반스앤노블과 보더스를 제칩니다. 창업 3년 후에는 주식 상장에도 성공하죠.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은 1998년부터는 책을 넘어 음악, 비디오, 그리고 다양한 상품에 손을 뻗게 됩니다. 2000년에는 전자책(e-book), 2002년에는 아마존웹서비스가 탄생하죠. 2001-2002년 닷컴 버블 사태에 휘말려 부도 위기에 봉착했으나 정원을 14% 감축하는 등 환골탈태하며 살아남아 1년 만에 다시 400만 불 흑자를 달성합니다. 2007년에는 노하우 축적을 기반으로 전자책 단말기 킨들(Kindl)을 출시합니다. 독서할 때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만큼의 몰입감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제프 베이조스의 목표라고 합니다. 2010년 이후 아마존은 온라인 상거래 시장에서 독보적인 최강자로 자리 잡습니다. 2017년에는 미국의 식료품 기업 홀푸드(Whole Foods)를 인수하며 오프라인 그리고 식료품에도 손을 댑니다. 그리고 2021년 여름, 지구 상에서 가능한 모두 이룬 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 CEO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제 이 남자는 고등학생 때 꾸었던 꿈, 인류가 우주 진출을 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블루 오리진, 인간 우주 비행 스타트업이죠. 

 

 

3. 제프 베이조스의 철학

  제프 베이조스가 항상 강조하는 여섯 가지 핵심 가치들이 있습니다. 

 

1. 고객 집착

2. 주인 의식

3. 행동 중심

4. 소박함

5. 까다로운 고용 절차

6. 혁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극한의 고객 중심주의입니다. 제프의 비전은 아마존을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회사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찾고, 구경하고, 구매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곳, 아마존은 바로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이 철학은 아마존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임과 동시에, 지나치게 박리 정책을 펼친다는 이유로 아마존의 불안 요소이자 투자자들의 불만 요소이기도합니다. 

  고객 중심을 넘어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을 외치는 그의 경영 철학은 사실 아마존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에 직면합니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 고객에게 충실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봉이 미국 평균보다 낮고, 점심 식사를 보장해주지 않으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객 만족"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직원들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베이조스의 경영 철학은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해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외 많은 언론들에서 수년 전부터 베이조스가 직원들을 쥐어짜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2018년에 버니 샌더스는 반 아마존 법 또는 베이조스 반대법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한 인간의 삶은 복잡한 여러 측면들을 갖고 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달려온 사람에 대한 평가는 더욱 엇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를 소비자 지상주의자이거나 극한의 기회주의자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를 자기 일에 몰두한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누군가는 그를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움직이는 철저하고 신중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제프 베이조스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든 중요한 인생 철학 중 하나는 "후회를 최소화하는 삶"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나이 80이 되었을 때, 내가 월스트리트를 떠났던 걸 후회할까? 전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탄생을 놓친 건 정말 아쉽다." 후회가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후회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 제프 베이조스는 비록 인터넷의 시작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막 태동하고 있던 인터넷 시장에 재빨리 몸을 던져 아마존(Amazon)이라는 기업을 일구어낸, 지구 상 가장 성공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우주를 여행하는 제프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그의 나이 아직 겨우 57세이니, 아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